[카드1]2025년 단체교섭 기록-⑤의견일치 조문은 어떻게 쌓였나

의견일치 조문은 어떻게 쌓였나

2025년 8월 18일 ~ 9월 16일 · 교섭을 ‘긴 요구안’에서 ‘상태별 조문 관리’로 바꾼 시간

단체협약은 마지막 서명으로 완성됩니다. 하지만 실제 교섭의 현장에서 단체협약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조문 하나를 놓고 설명하고, 반박하고, 다시 고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과 더 논의해야 할 문장을 나누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이번 중울산농협 단체교섭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긴 요구안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측 제시안이 있었고, 다시 조문별 검토가 이어졌습니다. 어느 조항은 비교적 쉽게 정리될 수 있었지만, 어느 조항은 단어 하나를 두고도 쉽게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것이 바로 의견일치 조문이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은 단순히 “쟁점이 없던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합의된 조항을 모아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교섭이 계속 흩어지지 않도록 만든 중간 기준표였습니다. 이미 확인한 것은 확인한 대로 묶고, 아직 남은 것은 남은 쟁점으로 따로 관리하기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긴 요구안과 긴 제시안이 서로 맞서는 단계에서 벗어나, 교섭을 실제 단체협약 문장으로 바꾸기 위한 첫 번째 정리 작업이었습니다.


1. 의견일치 조문은 ‘쉬운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의견일치 조문은 합의가 쉬웠던 조항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의견일치 조문 안에는 임금, 휴가, 인사위원회, 안전보건, 교섭절차, 직장 내 괴롭힘, 개인정보, 복리후생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조항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조항은 사측이 큰 이견 없이 받아들인 것도 있었고, 어떤 조항은 기존 규정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했고, 어떤 조항은 노측 요구안의 표현을 고쳐야 했고, 어떤 조항은 “이 정도 문구라면 서로 확인할 수 있겠다”는 수준까지 좁혀진 것이었습니다.

즉, 의견일치 조문은 처음부터 쉬웠던 조항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설명과 검토 끝에 더 이상 같은 쟁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따로 묶은 조항이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했습니다. 교섭이 길어질수록 모든 조항을 처음부터 다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조항은 정리된 조항대로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쟁점이 보입니다.

합의 가능한 조항을 묶는 일은 남은 쟁점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은 쟁점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2. 8월 18일, 교섭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

2025년 8월 18일 제5차 본교섭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실무교섭을 통해 조문을 순서대로 검토해 왔습니다. 각 조항에 대해 노측 요구안과 사측 제시안이 어떻게 다른지, 어느 부분에서 의견이 맞고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섭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계속 조문을 읽고, 의견을 말하고, 다시 다음 조문으로 넘어가는 방식만으로는 교섭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습니다. 정리된 조항과 남은 쟁점이 구분되지 않으면,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5차 본교섭에서는 이미 실무교섭에서 어느 정도 의견이 모인 조문을 먼저 정리하고, 미합의 조문은 따로 확인해 교섭의 속도를 높이자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진행 방식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교섭이 “주장 대 주장”의 단계에서, 합의 가능한 조문과 남은 쟁점을 관리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대체로 맞다”고 말하는 것과, 조문을 문서로 정리하고 간사 확인을 거쳐 남기는 것은 다릅니다.

말은 지나갑니다. 문서는 남습니다. 그리고 남은 문서는 다음 교섭의 기준이 됩니다.

의견일치 조문은 그렇게 필요해졌습니다.


3. 8월 26일, 49개를 골라내던 회의

제5차 본교섭에서 만들어진 흐름이 실제 문서로 정리된 자리가 8월 26일 제6차 실무교섭이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될 때, 사측은 단체협약 요구안이 방대하고 복잡하다는 우려를 분명히 표명했습니다. 책도 두꺼워지고 복잡해지는 느낌이라는 것, 노측이 그동안 제출한 자료가 공부와 연구가 많이 들어간 흔적이 보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합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기존 규정과 중복되는 부분, 실제 운영에 부담이 되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에 노측 류동연 조직실장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사측이 동의한 부분을 1차적으로 합의 사항으로 걸러내고, 미합의 사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51개 조문이 책상 위에 올랐습니다. 그중 25조와 54조는 다시 한 번 검토하기로 빼고, 나머지 49개를 1차 의견일치 조항으로 처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49개는 실무 간사의 사인으로 정리되어, 본교섭의 무거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합의된 것으로 다루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회의는 49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측이 추가로 제출한 노측 수정안에 대해, 사측 노무사가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입니다. 너무 많고, 2010년 이후 사실상 새로 시작하는 단체협약인데 다른 농협·축협의 조항을 다 섞어서 강화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면 심플하게 시작해서 잘 돌아가면서 보완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류동연 조직실장은 단호하게 응답했습니다.

“단협은 역사거든요. 그 역사 속에 있는 거고, 특히나 전국 협동조합 본부의 단협은 농협과 축협의 경험을 축적해서 만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이나 이런 것들이 다른 데보다 훨씬 세밀하게 많이 작성하고 있다는 건 인정을 합니다. 다만 그것을 작성하는 과정 속에서는 노동자의 요구나 노동자의 의견이 배제돼 있거든요. 15년의 과정 속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좀 더 원칙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그런 고민들이 단협에 담긴 겁니다.” — 류동연 부울경본부 조직실장, 6차 실무교섭(2025.08.26)

이 발언은 그날 회의의 결정적 자리였습니다. 사측이 “심플하게 가자”고 한 데에 대해, 노측은 “단협은 역사다”라는 관점으로 응답했습니다. 두 입장은 끝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노측의 기준선은 분명해졌습니다.

이 회의가 끝난 후 노측 안에서 한 가지 정직한 점검이 시작되었습니다. 49개 의견일치 조항을 받아낸 것은 분명한 부분 성과지만, 단체협약이 다루어야 할 가장 무거운 자리들은 여전히 회의실 중앙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이 인식이 이후 약 3주의 작업을 결정했습니다.


4. 단체협약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시간

이 무렵 지회가 마주한 작업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었습니다. 단체협약을 마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일”처럼 다시 풀어내야 했습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조항도, 교섭 자리에서는 다시 설명해야 했습니다. 왜 이 조항이 필요한지, 기존 규정만으로는 왜 부족한지, 이 조항이 조합원 전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야 했습니다.

특히 사측은 여러 조항에서 기존 규정과 운영 기준을 강조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된다”, “운영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표현이 너무 강하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이 반복되었습니다.

지회는 그 앞에서 다시 정리해야 했습니다.

단체협약은 규정을 무너뜨리는 문서가 아닙니다. 규정이 흔들림 없이, 조합원에게 불리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절차와 기준을 세우는 문서입니다.

단체협약은 사용자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문서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노사가 어떤 기준으로 확인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서입니다.

단체협약은 간부 몇 사람의 활동을 위한 문서가 아닙니다. 조합원이 혼자 문제를 감당하지 않도록 지회가 움직일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문서입니다.

이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의 작업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었습니다. 지회가 가진 문제의식을 사측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다시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요구안의 문장을 줄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질문이 더 정교해졌습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어떤 상황에 쓰이는가. 조합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측의 우려를 반영하더라도 반드시 남겨야 할 문장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거치며 단체협약은 조금씩 “긴 요구안”에서 “합의 가능한 문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5. 8월 27일, 첫 의견일치 조문이 문서로 묶였습니다

8월 27일에는 제1차 의견일치 조문이 정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교섭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노사가 확인한 조문을 말이 아니라 문서로 남겼다는 점입니다. 회의 자리에서 “그 부분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조문을 표로 정리하고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문서로 묶이는 순간, 그 조항은 다음 교섭의 기준이 됩니다. 다시 처음부터 같은 논의를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합원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진행 상황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교섭이 진행 중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합원은 궁금합니다. 무엇이 정리되었는가, 무엇이 아직 남았는가, 지회가 요구한 내용 중 어떤 것이 실제 단체협약 문장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가, 어떤 쟁점은 끝까지 다뤄야 하는가.

1차 의견일치 조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 번째 자료였습니다.

그 안에는 인사위원회, 임금, 휴가, 연장근로, 안전보건, 교섭절차 등 여러 영역의 조항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각 조항의 성격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노사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다투지 않고, 일정한 문장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 조항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중요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은 교섭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교섭이 실제로 쌓이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6. 9월 2일~5일, ‘긍정검토’는 가능성을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만으로 교섭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더 어려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긍정검토 조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습니다.

긍정검토 조문은 완전히 합의된 조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닫힌 조문도 아니었습니다. 사측이 일정 부분 검토 가능성을 보인 조항들이었고, 지회는 그 가능성을 말로만 남겨둘 수 없었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는 조합원의 권리가 되지 않습니다. 교섭 자리의 말이 단체협약의 기준이 되려면, 결국 문장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9월 2일부터 9월 5일 사이, 지회는 긍정검토 조문에 대한 노측 수정안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이 작업은 양보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회가 무엇을 정말 중요하게 보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문장을 줄여도 남아야 할 핵심은 무엇인가. 표현을 바꿔도 사라지면 안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번에 합의 가능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 조항은 무엇인가. 아직은 미합의로 남기더라도 다음 과제로 붙들어야 할 조항은 무엇인가.

긍정검토 조문을 다듬는 일은, 가능성을 실제 기준으로 바꾸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7. 9월 5일, 한 단어의 무게를 확인하는 자리

이 무렵 작업의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리가 9월 5일 제7차 실무교섭이었습니다. 사측 노무사가 노측 수정안을 한 조문씩 짚어가며 검토 의견을 제시했고, 노측은 그 의견에 대해 다시 답하면서 표현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뤄진 것이 바로 단체협약 문장의 무게였습니다. “합의한다”와 “협의한다”는 다릅니다. “제공한다”와 “제공할 수 있다”도 다릅니다. 그런 한 단어, 한 표현의 차이를 한 조문씩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그날 인상 깊었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1조의 한 단어 차이입니다.

노측 안은 “농협은 노동조합 이외의 직원협의회, 노사협의회, 동호회, 상조회 등의 단체와 교섭할 수 없으며 그 단체와의 협의나 합의 등은 효력이 없다”였습니다.

사측 안은 “농협은 노동조합 이외의 직원협의회, 노사협의회, 동호회, 상조회 등의 단체는 교섭당사자가 아님을 확인하며, 이러한 단체와 체결한 협의 내지 합의는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였습니다.

두 문장의 차이는 매우 미묘했지만 결정적이었습니다. 노측 안이 “효력이 없다”고 한 것은 어떤 형태의 효력도 부정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측 안이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만 부정할 뿐, 다른 형태의 효력 — 노사협의회 의결, 사규·지침 개정, 공지 등 — 은 살아 있을 수 있음을 함축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노조를 우회할 수 있는 통로가 한 단어에 의해 살아 있는 셈이었습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한 조항씩 짚어가는 것이 7차 실무교섭의 성격이었습니다. 동호회 지원 조항에서 “10명 이상의 회원으로 동호회를 조직하여 농협의 동호회 준칙에 따라 등록한 경우” 라는 한 줄로 정리된 자리, 신입직원 교육 시 노동조합 소개 시간을 어떻게 명시할 것인가의 표현, 자료 열람·복사에서 개인정보 보호의 단서를 어떻게 둘 것인가 — 이런 세부적인 표현들이 한참 동안 다루어졌습니다.

회의 전후로 지회는 여러 자료를 다시 대조했습니다. 2010년 단체협약, 2025년 노측 요구안, 사측 제시안, 조직실장 제안, 지회장 수정안, 긍정검토 조문, 미합의 조문을 비교해야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작은 수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체협약에서 문장 하나는 작지 않습니다. 나중에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결국 꺼내 보는 것은 그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지회가 이 시기에 했던 일은 단순한 편집이 아니었습니다. 조합원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문장과 실제 합의 가능한 문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8. 9월 8일, 본부와 지부가 한 문서 위에서 만나다

9월 8일에는 또 하나의 작업이 있었습니다. 단체협약 전체에 대한 노측 전제조항 정리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문서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교섭이 길어질수록 조문 하나하나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전체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조합활동 조항은 조합활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사와 징계 조항은 인사와 징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로시간, 휴가, 복리후생, 개인정보, 안전보건 조항도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 조합원이 일터에서 어떤 기준으로 보호받을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의 작업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부울경본부의 시각과 중울산지부의 시각이 한 문서 위에서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본부는 단체협약이 가진 보편적 원칙과 다른 사업장의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울경본부에는 협동조합 안의 여러 농협·축협의 단체협약 경험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그 경험에서 검증된 조항들을 중울산농협의 새 단체협약에 반영하려는 시각입니다.

지부는 중울산농협이라는 구체적 현장의 사정과 조합원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농협·축협의 경험이 아무리 좋아도, 중울산농협의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는가를, 매일 그 사람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지부가 가장 잘 압니다.

이 두 시각이 한 문서 위에서 부딪히고 또 만나는 자리들이 있었습니다.

16조 홍보활동에서, 본부의 시각은 사측 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화 방향이었습니다 — “노동조합 활동에 필요한 홍보물을 조합원에게 자유로이 배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부의 시각은 본부 안에 없던 항들을 추가하는 구체화 방향이었습니다 — “조합과 농협이 협의 지정하는 장소에 조합 게시판을 사무실 내 설치를 보장한다”, “노동조합은 농협 내의 통신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본부가 사측과의 합의 가능성을 우선했다면, 지부는 현장에서 조합 활동의 인프라를 분명히 명시하는 것을 우선했습니다.

42조 휴직자 처우에서는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본부의 시각은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하자는 단순화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부의 시각은 구체적 보호 조항을 추가하는 방향이었습니다 — “구속 또는 기소로 휴직된 경우 처우는 관련 규정에 따르되, 농협·노동조합 관련 사유로 무죄확정 또는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받은 때에는 휴직 중 미지급·감액된 임금을 임금·인사 관련 규정에 따라 소급 정산한다.” 이 자리에서는 지부가 현장의 구체적 위험 —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한 구속·기소 가능성 — 을 더 강하게 반영했습니다.

73조 유연근로제에서는 지부가 본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본부의 시각은 이 조항 자체를 삭제하고 “관련 법률 적용”, “근로자대표와의 협의 내지 동의 절차”로 갈음하자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부의 시각은 5개 항으로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 “유연근로제 실시 시 노동조합과 합의하여야 한다”, “탄력적 근무 시간제 도입 시 기존 임금을 저하시킬 수 없다”, “최소한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런 차이들은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부의 시각은 “전체 노동조합의 표준 모델”을 향하고 있었고, 지부의 시각은 “중울산농협 조합원의 구체적 보호”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두 시각이 한 문서 위에서 조정되는 것 자체가, 단체협약을 만드는 일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결과물이 9월 16일 9차 실무교섭의 자료가 되었습니다.


9. 9월 9일, 짧게 끝난 회의

제8차 실무교섭은 47분 만에 끝났습니다. 사측 노무사가 산재 사고 조사 관계로 다시 노동부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한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사측 인사팀장이 솔직하게 토로한 것입니다. 그동안 공문 서류가 워낙 많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 게 최근 건지도 모르겠고, 한번 덮어버리면 또 다시 열어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업장의 단체협약은 100조도 잘 안 넘는데, 중울산농협 협상은 부칙까지 다 다루다 보니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어려움도 함께 표현했습니다.

이 말에 류동연 조직실장은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이게 역사가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사업장이 작아서 그런 게 아니라, 작고 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있으면 당연하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으면 또 중울산에서 이렇게 하는 게 더 낫네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다른 데 전파하면 되는 거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하는 거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정말 이거는 좀 너무 아닌 것 같다는 부분이 있으면 주십시오. 저희도 검토하겠습니다.” — 류동연 조직실장, 8차 실무교섭(2025.09.09)

8월 26일의 “단협은 역사다”라는 첫 응답이 9월 9일에도 같은 결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회의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주 9월 16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10. 9월 16일, 조문은 상태별로 나뉘었습니다

2025년 9월 16일 제9차 실무교섭에 이르러, 교섭은 다시 한 번 중요한 정리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조문은 더 이상 하나의 긴 목록으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합의 가능한 조문, 추가로 의견일치가 가능한 조문, 긍정적으로 검토되었지만 문구 조정이 필요한 조문, 아직 입장 차이가 큰 미합의 조문, 전체 방향을 확인해야 하는 전제조문으로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노측 요구안과 사측 제시안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조항이 있었고, 각각의 조항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한눈에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9월 16일을 거치면서 조문들은 상태별로 정리되었습니다.

무엇은 이미 확인되었는가. 무엇은 사측 안을 수용해 정리할 수 있는가. 무엇은 노측 수정안을 더 설명해야 하는가. 무엇은 긍정검토에서 의견일치로 넘어갈 수 있는가. 무엇은 미합의로 남겨 계속 다루어야 하는가.

이 구분이 생기자 교섭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모든 조항을 한꺼번에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조항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새롭게 의견 일치로 추가된 조항으로는 24조 사회적 책무, 27조 장애인 고용 일부, 28조 고령자 고용, 139조, 140조 퇴직급여금, 149조 등이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류동연 조직실장은 솔직한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네 차례 실무교섭으로 좁혀보자고 했지만 32개 긍정검토 조항 중에서 사실 절반도 안 된 부분이 많고, 다음 주는 추석 명절 주간이라 회의가 어려우니, 추석 후 10월 14일에 본교섭을 한 번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날 마지막에, 노측 이민수 지회장은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제가 마무리 발언 한 번만 좀 하겠습니다. 제가 사실은 이제 저희 노측 안이라고 해가지고 이렇게 드리는 것들이, 그때 이제 말씀하신 것처럼 좀 간소화해 달라고도 하시고 그다음에 규정을 최대한 좀 적용해 달라고 하셔가지고, 이렇게 맞춰서 좀 했다는 말씀을 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하고 있다는 거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민수 지회장, 9차 실무교섭 마무리(2025.09.16)

이 한 마디에는 그 3주 동안의 모든 시간이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8월 26일에 사측이 요구한 두 가지 — “간소화”와 “규정 적용” — 를, 노측은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안을 다시 쓰고, 표현을 다듬고, 한 조문씩 협의해 가며 의견 일치 조항을 늘려 갔습니다.

그 결과가 9월 16일의 4분류 정리였습니다.

의견일치 조문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이 쌓였기 때문에, 미합의 쟁점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합의 가능한 것은 합의 가능한 것으로, 더 다듬을 것은 더 다듬을 것으로, 남겨야 할 것은 남겨야 할 쟁점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1. 무엇을 얻었나

이 시기 지회가 얻은 것은 단순히 몇 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교섭을 관리하는 틀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긴 요구안과 긴 제시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8월 말과 9월을 지나면서 교섭은 상태별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 긍정검토 조문. 전제조문. 미합의 조문. 추가 수정안.

이 구분은 단순한 서류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교섭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조합원에게 설명하기 위한 기준이었습니다. 지회 내부에서도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조정할지 판단하기 위한 지도였습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지회가 자신의 요구를 다시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처음 요구안을 만들 때는 많은 것을 담아야 했습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느낀 문제를 빠뜨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섭이 진행되면서 지회는 다시 물어야 했습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무엇인가. 조합원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 교섭에서 문서로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 과제로 남겨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절대 흐려져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거치며 단체협약은 더 현실적인 문서가 되어 갔습니다. 완벽한 요구안이 아니라, 실제로 합의하고 운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다듬어졌습니다.


12. 조합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

조합원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의견일치 조문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결국 최종 단체협약서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최종 단체협약서가 가장 중요한 문서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최종 문서만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조항은 처음부터 쉽게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항은 여러 번 문구를 고친 끝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조항은 지회가 중요하게 보았지만, 이번에는 미합의로 남았습니다. 어떤 조항은 사측의 우려를 반영해 표현을 조정했습니다. 어떤 조항은 “지금은 이 정도 문장으로 남기고, 운용 과정에서 살려가자”는 판단 속에 정리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단체협약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문서가 아닙니다. 긴 요구안이 있었고, 사측 제시안이 있었고, 실무교섭이 있었고, 본교섭이 있었고, 수정안이 있었고, 의견일치 조문이 있었고, 미합의 조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지회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줄이면 조합원 보호의 핵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사측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무엇은 이번에 합의하고, 무엇은 다음 과제로 남겨야 하는가.

의견일치 조문은 바로 그 고민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지회는 앞으로도 최종 결과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남겼는지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그래야 조합원 여러분도 단체협약을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우리 일터의 기준이 만들어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의견일치 조문이 어떻게 쌓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합의 가능한 조문이 정리된 뒤에도, 왜 일부 쟁점은 끝까지 미합의로 남았는지 정리하겠습니다. 무엇이 남았고, 지회는 왜 그 쟁점을 중요하게 보았는지 차분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중울산농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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